Late Pleistocene Aspects and Its Evidence of Human occupations in Northeast Asia and East Siberia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first Americans
Tae-Yong Yu
Abstract
Tae-Yong Yu
Abstract
신대륙 고고학자들에게 있어서 여러 논쟁 중의 하나가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다. 신대륙의 고고학자 대부분은 아메리카 인디언은 아시아의 큰 사냥감을 사냥하던 사람들이 먹이감을 따라 Beringia를 건너게 되면서 북미대륙에 이주하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일부 러시아 고고학자들을 제외하면 구대륙의 고고학자들에게도 그들 자신의 깊은 연구결과 없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BR 비록 북경원인이 중국에서 1929년에 발굴되었다 하더라도,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에서의 구석기시대에 관한 연구는 정치적 혼란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 되었다. 게다가 동아시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구석기시대에 관한 학문적 성과는 서구세계에 거의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의 사용 등으로 인하여 동아시아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구석기시대의 연구 성과물을 종합하는데 있어서도 연구의 접근성이라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BR 북미 인디언의 原住地로 생각되는 동북아시아의 Pleistocene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늦은 후기구석기시대 동안에는 한국, 중국, 그리고 홋가이도섬의 북위 39° 북쪽지역은 스텝지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반면에 티베트분지와 YeniseiRiver의 동쪽 지역은 거대한 빙하로 덮여있었다. 마지막 빙하기에 황해는 육지로 형성되면서 아시아대륙에서 한반도, 일본열도, 홋가이도섬 등지로 초기 Homosapiens와 같은 시기 동물군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BR 중국에서는 Homoerectus, ArchaicHomosapiens, 그리고 Homosapienssapiens 같은 고인류들이 일정한 시기를 두고 주구점 동굴 상층, 오르도스, 내몽골, 그리고 타이완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한국에서는 상원 동굴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 온난과 한냉 시기의 동물화석들이 여러 석기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아슐리안형 석기들은 한국의 연천 전곡리, 파주 금파리, 보령 관창리 등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BR 시베리아에서는 Dyuktai 유적지는 약 18,000년 전의 초기 Sartan 빙하기의 중기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Tseitlin에 의하면, Sartan빙하기에 시베리아에서의 인간의 점거는 아주 극히 제한적이었고, 따라서 이 시기에 인간의 거주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動物相에 있어서 털코뿔이(Coelodontaantiquitatis)는 구대륙에만 존재하였으며, 15,000년 전 이후의 유적지에서는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는 동물화석이다. 따라서 털코뿔이는 동부 시베리아에서의 인간 점거에 대한 중요한 지표 화석으로 활용될 수 있다.BR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연구성과를 고려하면, 아메리카 인디언의 북미대륙으로의 이주는 대략 18,000년 전 이후에나 가능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며, 고인디언들이 Beringia를 건너 북미대륙으로 이주한 시기는 현재까지 고고학적 성과로 보았을 때 적어도 11,500년 이전에는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Hoffecker와 Goebel은 환경 변화에 의한 주요 간빙기(12,000~11,000B.P.)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르러 Beringia에 인간 점거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았다.BR 그러나 문제는 북미대륙의 인간 이주에 대한 약 11,500년 이전의 확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Clovis문화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되고 확고한 고고학적 문화 복합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북미 대륙의 Clovis문화 복합체의 석기제작기술과 동북아시아의 세석기 석기공작 사이의 주된 차이점이 고고학적 유물에 반영되어 있다. 즉, Beringia를 건넌 사람들이 남쪽의 신대륙 환경 속으로 확산되어 나가면서 석기제작기술과 석기조합에서 급격한 적응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Clovis첨두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리고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단일지향적 이동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이동 현상은 Beringia를 건넌 사람들의 신대륙에의 인간 점거 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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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고고학자들에게 있어서 여러 논쟁 중의 하나가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다. 신대륙의 고고학자 대부분은 아메리카 인디언은 아시아의 큰 사냥감을 사냥하던 사람들이 먹이감을 따라 Beringia를 건너게 되면서 북미대륙에 이주하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일부 러시아 고고학자들을 제외하면 구대륙의 고고학자들에게도 그들 자신의 깊은 연구결과 없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BR 비록 북경원인이 중국에서 1929년에 발굴되었다 하더라도,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에서의 구석기시대에 관한 연구는 정치적 혼란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 되었다. 게다가 동아시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구석기시대에 관한 학문적 성과는 서구세계에 거의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의 사용 등으로 인하여 동아시아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구석기시대의 연구 성과물을 종합하는데 있어서도 연구의 접근성이라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BR 북미 인디언의 原住地로 생각되는 동북아시아의 Pleistocene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늦은 후기구석기시대 동안에는 한국, 중국, 그리고 홋가이도섬의 북위 39° 북쪽지역은 스텝지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반면에 티베트분지와 YeniseiRiver의 동쪽 지역은 거대한 빙하로 덮여있었다. 마지막 빙하기에 황해는 육지로 형성되면서 아시아대륙에서 한반도, 일본열도, 홋가이도섬 등지로 초기 Homosapiens와 같은 시기 동물군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BR 중국에서는 Homoerectus, ArchaicHomosapiens, 그리고 Homosapienssapiens 같은 고인류들이 일정한 시기를 두고 주구점 동굴 상층, 오르도스, 내몽골, 그리고 타이완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한국에서는 상원 동굴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 온난과 한냉 시기의 동물화석들이 여러 석기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아슐리안형 석기들은 한국의 연천 전곡리, 파주 금파리, 보령 관창리 등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BR 시베리아에서는 Dyuktai 유적지는 약 18,000년 전의 초기 Sartan 빙하기의 중기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Tseitlin에 의하면, Sartan빙하기에 시베리아에서의 인간의 점거는 아주 극히 제한적이었고, 따라서 이 시기에 인간의 거주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動物相에 있어서 털코뿔이(Coelodontaantiquitatis)는 구대륙에만 존재하였으며, 15,000년 전 이후의 유적지에서는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는 동물화석이다. 따라서 털코뿔이는 동부 시베리아에서의 인간 점거에 대한 중요한 지표 화석으로 활용될 수 있다.BR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연구성과를 고려하면, 아메리카 인디언의 북미대륙으로의 이주는 대략 18,000년 전 이후에나 가능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며, 고인디언들이 Beringia를 건너 북미대륙으로 이주한 시기는 현재까지 고고학적 성과로 보았을 때 적어도 11,500년 이전에는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Hoffecker와 Goebel은 환경 변화에 의한 주요 간빙기(12,000~11,000B.P.)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르러 Beringia에 인간 점거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았다.BR 그러나 문제는 북미대륙의 인간 이주에 대한 약 11,500년 이전의 확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Clovis문화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되고 확고한 고고학적 문화 복합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북미 대륙의 Clovis문화 복합체의 석기제작기술과 동북아시아의 세석기 석기공작 사이의 주된 차이점이 고고학적 유물에 반영되어 있다. 즉, Beringia를 건넌 사람들이 남쪽의 신대륙 환경 속으로 확산되어 나가면서 석기제작기술과 석기조합에서 급격한 적응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Clovis첨두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리고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단일지향적 이동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이동 현상은 Beringia를 건넌 사람들의 신대륙에의 인간 점거 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Key concepts: Beringia, Pleistocene, Geology, Archaeology, Ge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