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rish Famine and the Relief Policies of the British Government: 1845-1849
Tai-sook Lee
Abstract
Tai-sook Lee
Abstract
이 논문은 거의 5년간 지속된 아일랜드대기근 동안 영국정부의 구호정책의 변화를 조사했다. 영국의 구호정책의 변화를 야기할 변수로서 정책주체에 초점을 맞춰 보수당과 자유당,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과 관료, 그리고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을 선정하고 각각의 구호정책제안을 비교했다. 결론은 보수당과 자유당이 빈민에게 제한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공공사업을 벌였을 때 정책양상이나 자유주의이념에서 양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 구호정책의 변화시점은 기근 3년차인 1847년 자유당정부가 새 빈민법을 제정했을 때인데 그 의의는 4가지다. 첫째, 법에서 보는 변화는 노역원운영과 옥외구호를 병행하고 구호비용을 아일랜드빈민세에 전담시킨 것이다. 둘째, 빈민법제정에 이르는 논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일랜드인에 대한 폄하가 난무했고 재난의 책임을 아일랜드인에게 지우며 대두한 응징론이 법에 반영됐다. 셋째, 아일랜드인 폄하는 언론이 가장 노골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 내용에서 관료 트리벨리언이나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넷째, 1847년 빈민법의 근본의의는 영국정부가 구호의 직접책임을 방기하고 아일랜드를 영국과 별개의 단위로 표상하는 것을 강화함으로써 영국과 아일랜드의 합방이념을 약화시켰다는 데 있다. 결국 영국정부는 아일랜드대기근에 대처한 정책에서 아일랜드인의 반감을 키웠고 의도하지 않은 채 합방체제를 약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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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거의 5년간 지속된 아일랜드대기근 동안 영국정부의 구호정책의 변화를 조사했다. 영국의 구호정책의 변화를 야기할 변수로서 정책주체에 초점을 맞춰 보수당과 자유당,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과 관료, 그리고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을 선정하고 각각의 구호정책제안을 비교했다. 결론은 보수당과 자유당이 빈민에게 제한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공공사업을 벌였을 때 정책양상이나 자유주의이념에서 양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 구호정책의 변화시점은 기근 3년차인 1847년 자유당정부가 새 빈민법을 제정했을 때인데 그 의의는 4가지다. 첫째, 법에서 보는 변화는 노역원운영과 옥외구호를 병행하고 구호비용을 아일랜드빈민세에 전담시킨 것이다. 둘째, 빈민법제정에 이르는 논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일랜드인에 대한 폄하가 난무했고 재난의 책임을 아일랜드인에게 지우며 대두한 응징론이 법에 반영됐다. 셋째, 아일랜드인 폄하는 언론이 가장 노골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 내용에서 관료 트리벨리언이나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넷째, 1847년 빈민법의 근본의의는 영국정부가 구호의 직접책임을 방기하고 아일랜드를 영국과 별개의 단위로 표상하는 것을 강화함으로써 영국과 아일랜드의 합방이념을 약화시켰다는 데 있다. 결국 영국정부는 아일랜드대기근에 대처한 정책에서 아일랜드인의 반감을 키웠고 의도하지 않은 채 합방체제를 약화했다.
Key concepts: Famine, Irish, Government (linguistics), Political science, History, Economic history, Law,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