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교사회복지Requires access

The Recognizing anew of the History of Korean Arts in the early 1920s

Sihyeon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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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한 활동이었다. 비록 독립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3·1운동은 민족적 자아(自我)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민족이 재발견되었고, 이후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중심의 ‘대중운동’의 시대가 열렸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민족적 자아란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일까? 근대적 민족주의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에게 교육과 언론 매체를 통해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하여 조선 역사와 문화와 관련해서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일본인 주도의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에 대한 학술적 대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최남선이 주도한 잡지 『동명』을 중심으로 1920년대 전반기 조선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살펴보았다. 1920년대 전반기는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인이 주도해서 담론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다양한 출판물 가운데 조선 미술에 관한 정리는 민족사서술의 일환이며 동시에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더불어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문화 특히 조선 미술에 대한 정리는 ‘조선문화 연구’의 일환인 ‘조선학’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선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미술사(美術史)에 대한 논의에는 아직 조선인의 속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조선 미술사가 서술되지 않았기에, 조선 미술사 구성의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대 조선미술사 연구가 일본인 연구자와의 대결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당대 대표적인 미술사 연구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중국 미술의 ‘모방’ 논의와 통일신라시대를 예술의 황금기라고 보는 논리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 미술사의 구성과정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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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한 활동이었다. 비록 독립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3·1운동은 민족적 자아(自我)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민족이 재발견되었고, 이후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중심의 ‘대중운동’의 시대가 열렸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민족적 자아란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일까? 근대적 민족주의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에게 교육과 언론 매체를 통해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하여 조선 역사와 문화와 관련해서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일본인 주도의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에 대한 학술적 대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최남선이 주도한 잡지 『동명』을 중심으로 1920년대 전반기 조선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살펴보았다. 1920년대 전반기는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인이 주도해서 담론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다양한 출판물 가운데 조선 미술에 관한 정리는 민족사서술의 일환이며 동시에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더불어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문화 특히 조선 미술에 대한 정리는 ‘조선문화 연구’의 일환인 ‘조선학’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선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미술사(美術史)에 대한 논의에는 아직 조선인의 속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조선 미술사가 서술되지 않았기에, 조선 미술사 구성의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대 조선미술사 연구가 일본인 연구자와의 대결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당대 대표적인 미술사 연구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중국 미술의 ‘모방’ 논의와 통일신라시대를 예술의 황금기라고 보는 논리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 미술사의 구성과정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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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hod /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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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fin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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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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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ilable abstract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한 활동이었다. 비록 독립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3·1운동은 민족적 자아(自我)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민족이 재발견되었고, 이후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중심의 ‘대중운동’의 시대가 열렸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민족적 자아란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일까? 근대적 민족주의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에게 교육과 언론 매체를 통해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하여 조선 역사와 문화와 관련해서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일본인 주도의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에 대한 학술적 대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최남선이 주도한 잡지 『동명』을 중심으로 1920년대 전반기 조선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살펴보았다. 1920년대 전반기는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인이 주도해서 담론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다양한 출판물 가운데 조선 미술에 관한 정리는 민족사서술의 일환이며 동시에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더불어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문화 특히 조선 미술에 대한 정리는 ‘조선문화 연구’의 일환인 ‘조선학’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선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미술사(美術史)에 대한 논의에는 아직 조선인의 속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조선 미술사가 서술되지 않았기에, 조선 미술사 구성의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대 조선미술사 연구가 일본인 연구자와의 대결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당대 대표적인 미술사 연구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중국 미술의 ‘모방’ 논의와 통일신라시대를 예술의 황금기라고 보는 논리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 미술사의 구성과정을 검토했다.

Key concepts: Visual arts, The arts, Histo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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